2009.03.16 ~ 2009.04.30 / 청담
이혁준 사진전 <숲, Forest>
숲이라는 자연 환경을 주제로 하는 이 전시의 작품들은 작가가 촬영해 온 나무 사진들이 조합된 새로운 숲의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실존의 대상을 드러내는 사진을 통해 자신이 쌓아온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는 ‘숲’이라는 관념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지나간 시간을 담는 매체인 사진은 인간이 과거를 기억하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작가는 사진의 이러한 특징을 통해 ‘숲’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추상적 관념에 다가서고자 한 것이다. 실재 숲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시각적으로도 미묘한 현실성 혹은 추상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독특한 느낌은 디지털 프로세스와 손을 통해 직접 이미지를 이어붙이는 과정이 동시에 적용된 그만의 방법을 통해 완성되었다.
실체와 개념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이혁준의 이번 전시는 우리 자신만의 숲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작가 노트
사진은 기억이다. 기억의 축적은 관념을 구축한다. 시간과 공간. 이 두 가지 개념은 나의 존재를 규정짓는다. 지금까지 나는 인생의 모든 지점에서 이 둘의 조합을 벗어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 남아있는 사진적 행위의 모든 결과들은 그러한 시공간의 흔적인 것이다. 지나온 생은 현재의 시점에서 기억 파편들의 덩어리이고, 그것들은 ‘나’라는 개인 존재 안에 집적되어있다. 그 안에서 특별한 규칙을 찾아 볼 수는 없지만, 그들은 분명 서로간의 유기적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기억은 가끔은 언어적으로, 때로는 이미지에 의해 다른 파편들과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그렇게 얽혀져 있는 나의 단편적 경험들의 조합이다.
숲이라는 공간
1. 인간은 살아가기 위하여 자연에 변형을 가한다. 나무를 베고, 산을 깎아내고, 물을 막고, 바다를 메운다. 인간적 삶을 위한 이러한 행위가 특별한 것은 새로이 구축된 인공의 환경 속에 다시 자연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있다.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고, 호수와 물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조성된 새로운 자연의 원천에는 우리가 지워버린 ‘자연’이라는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 작업들은 그 이미지의 재연이다. 경험했던 나무의 조각들이 종이위에 모여 실존하지 않는 숲을 이룬다. 이는 도시에 숲을 가꾸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자 공감이고, 개인적 차원의 또 다른 조경이다.
2.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 군집된 형상. 그것은 때로는 자연의 모습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누군가가 만져놓은 형태로 존재한다. 지나쳐온 많은 숲들, 그들을 담아놓은 사진들이 언제 어디서였는지를 나는 구분할 수 없다. 다만 모두는 내 안에서 ‘숲’이라는 관념과 함께 덩어리로 존재한다. 그것을 드러낸 이 작업들은 수집의 흔적이자, 경험에 의한 조경이다.
방법론 - 디지털
이 작업은 실재하는 대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경험들로 구성된 관념의 재구성에 그 목적이 있다. 때문에 디지털 프로세스는 여러 측면에서 유용했다. 기억을 수집한다는 차원의 촬영 용이성은 물론이고, 각 기억 조각들의 조합과 재배열의 과정, 그리고 최종 인화에서의 질감 선택에 있어 정형화 되어있는 필름 프로세스가 드러내기 어려운 표현을 가능케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