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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연대기

개관전 - 「짧은 연대기」 2005.10.05 ~ 2005.11.27

강운구(70년대) · 권태균(80년대) · 허용무(90년대)

글 - 이기명 (사진갤러리 瓦WA 디렉터)

사진갤러리 “瓦WA” 개관전의 전시작「짧은 연대기」는 한국 농·어촌의 70, 80, 90년대에 관한 기록, 해석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사진전이다. 이 전시회에서 무엇보다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회의 탐구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 제 현상의 패턴을 정의하고 원인을 설명하여 보다 깊은 시대의 중요한 역사 기록을 제공한다. 그래서 첫 기획으로 현재의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사진가 가운데 중심축을 이루는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를 초대하였다.「짧은 연대기」라는 전시명을 달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반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록 지난 30년간의 연대기이지만, 그 기간은 이 땅에서 가장 변화가 컸던 시기이다. 이번에 전시하는 세 작가가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기나긴 이야기들을 함축한 것이다. 이 작가들은 사라진 시대를 울림이 길게 제시한다. 첫 단추의 의미를 새삼 강조하지 않더라도, 3인의 사진 세계가 갤러리의 성격과 방향성에 지표가 되리라 믿는다.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는 스스로 작업의 역사를 지닌 사진가들이다. 주제의 깊이와 통일, 나아가 작업의 지속성을 갖고 있다. 한 주제에 대한 관점, 주장, 해석이 뚜렷하여 하나의 주제를 위해 통일되고 정돈된 의미를 만들어낸다. 덧붙여 그 주제 혹은 그와 유사한 주제들을 오랜 기간동안 천착함으로써 작업의 일관성을 획득하였다.

세상의 모든 일과 연구가 대상에 대한 회의로부터 시작하듯이, 강운구에게 있어서 1970년대 초반에 새마을운동에 관한 회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고 현실에 능동적으로 저항하도록 하였다. 1960,70년대 군사정권에 의한 근대화의 목표는 너무도 분명했고 강력해서 뒤돌아볼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듯 박정희 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급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강운구도 서둘러서 기록하여야겠다는 생각에 쫓기고 있었다. 그는 60년대 후반부터 제주도, 거제도, 흑산도, 다물도, 신안군의 여러 섬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산업사회로 돌입하면서 경제개발과 독재라는 씁쓸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70년대 상황 자체가 지식인이라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강운구도 사회발전의 개발 논리와 과정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비인간적인가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아래 초가를 헐어 함석지붕에다 시멘트벽을 발랐다. 국민의,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라 정권의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주택은 경제의 윤택에 따라서 변화할 때에 자연스러운 것인데 인위적인 전시행정으로 변화하였으니 주거 환경이 더 열악해졌다. 여름에 더 더워지고 겨울에 더 추워진 것이다. 주택개량이 합리적인 구조라면 발전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개발이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초가는 환경과 어울리고 풍토에 맞도록 오랫동안 잘 갖추어진 것으로 이 땅의 산물로 지어졌다. 그래서 초가는 마을 전경과 잘 어울렸다. 강운구의 사진은 어촌의 초가와 주변 환경이 어우러져 있다. 즉 자생적인 건축물 풍토에 어울리는, 이 땅의 고유한 서정성과 어우러지는 환경으로 자연의 질서와 사람들의 삶이 동시에 읽혀진다.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은 그의 ‘마을 삼부작’ 연장선에 있으며 이 ‘갯마을’을 추가함으로써 그의 70년대의 농어촌 다큐멘터리가 완결된다.

권태균은 80년대 후반 댐 건설로 수몰을 앞둔 안동시 임동면을 기록했다. 물이 부족하여 거대한 댐이 절실하다는 수몰의 경제적 이유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집단이주는 민초들이 스스로 지켜왔던 것을 갈갈이 찢겨나가게 한다. 그 곳에는 수천 년 동안 시간의 흐름을 축적하면서 삶의 터전으로 생활을 영위해온 사람들의 끈끈한 역사가 있다. 이곳에는 웃음도 있고 사랑도 있고 희생도 있지만, 반대로 미움도 있고 반목도 있고 질시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임하면에서 함께 한 시간이다. 바로 역사이다. 한 마을의 수몰은 이 역사를 한순간에 수장시키는 것으로 고향 전체를 잃게 한다. 마을 공동체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것, 정신적으로 지탱해온 것, 즉 생활과 역사와 문화 등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맞는 마지막 설날에 종손은 수몰 지역 바깥에 위패를 모시면서 슬피 곡을 하였다. 그리고 마을을 떠나는 날에 한 노파가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그들의 행위는 자신의 뿌리, 존재를 확인하는 의식이자 죄를 고하는 의례이다. 우리말의 ‘집’이란 단순히 건물만을 뜻하지 않고 주로 집안, 가문을 뜻한다.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집이 수몰당하는 것은 뿌리내리고 살아온 자리에서 뿌리에 달라붙은 흙까지 털려서 뿌리를 드러낸 채 아무데나 던져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뿌리 뽑힘의 문제이다.

70년대 근대화, 80년대 도시화 이후 90년대 심각한 이농현상으로 농촌은 파탄을 맞는다.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인위적으로 파괴되거나 도시화의 물결로 농촌은 공동화되어갔으며 농촌 존재의 당위성이 약화되어갔다. 그것은 바로 농촌 풍경의 소멸이기도 했다. 농촌 마을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추방된 것이다. 허용무는 개발이라는 자가당착적인 논리와 궤변을 통해서 유린된 농촌의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의 기층민에 관심을 가졌다.

현대사회는 도시화로 인해 삶이 고립되어가면서 예전의 농경사회와 달리 농부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독립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빚더미에 앉았거나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거나 일은 하지만 대가가 너무 적어 굶기도 해야 하는 절망적인 처지에 몰린 농민이 적지 않다. 그는 정선, 영월, 봉화, 안동 등 절망적인 농촌을 통해 가난이 엄청난 공포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참혹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희망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또한 허용무는 농촌의 노인 문제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길을 찾아서 젊은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고 남겨진 노인들은 아이들을 돌보아야 할 보모 역할로 전락했다. 그리고 농촌 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농촌 문화마저 파괴된 상황에서 노인들이 찾는 경로당은 노인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농촌에 대한 사고와 행동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농촌이 사라진다는 것은 농촌의 면적이 줄어든다는 의미도 있지만 농촌 공동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사진 작업은 시대 인식에 근거하여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상황 등을 기록하여 시대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사진은 그 시대의 산물이자 그 시대를 산 사람의 증언이다.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는 사진기자와 프리랜서를 오가면서 새로운 저널리즘의 실천과 사적 다큐멘터리를 접목시켜왔다. 그들은 부조리한 것에 대한 사건 위주의 단순보도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농어촌의 보편적 상황 즉 일상의 생활에 관심이 있다. 보편적 일상 속에 시대적 요소가 있고 보편성을 찾는 것이 시대의식의 정수를 추출하는 것이라 믿는다. 사건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증거로서의 사진이 아니라 사진가의 강한 해석으로 사회를 탐구한 사진이다. 그들의 사진은 사진가의 주관성, 정체성이 사실을 왜곡시키기보다 오히려 진실을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톰 울페(Tom Wolfe), 노만 마일러(Norman Mailer), 헌터 톰슨(Hunter Thompson) 트루만 카포테(Truman Capote) 등은 60년대 중반이후의 새로운 저널리즘의 경향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은 개인적 시각(personal vision)과 사실적 정보(factual information) 사이의 균형이며, 예술과 저널리즘 사이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것은 기록을 예술의 단계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매그넘(Magnum)의 이상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사진가의 주관적인 자아의식이 강해지면서 사진가의 개인적 시각이 강조되고, 사진의 관심이 내용에서 형식으로 옮겨지면서 영상적 표현의 독특한 다양성으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졌다.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의 다큐멘터리 작업은 정보뿐만 아니라 사진가의 기준 설정에 의하여 주관적인 느낌이나 견해 또는 대상에의 의미부여로 다큐멘터리 표현을 가진다. 이들은 개인적, 주관적 시각과 혁명적 영상성으로 사진가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버전을 제시한다. 주제에 있어서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사진 형식에 있어서도 감흥을 준다. 그들의 사진 세계는 사진가가 가진 독특한 표현법을 지칭하는 사진의 스타일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들 사진 주제의 공통점은 기층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그런데 전통적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대표격인 도로디어 랭(Dorothea Lange)나 유진 스미스(W.Eugene Smith)의 사진으로부터 현대영상사진의 대표주자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나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그리고 ‘뉴 다큐멘트(New Documents)'의 개리 위노그랜드(Garry Winogrand), 리 프리들랜드(Lee Friedlander), 다이안 아버스(Diane Arbus) 나아가 당대의 ‘포스트 다큐멘터리(Post Documentary)'에 이르기까지 다큐멘터리 사진의 주제는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관심이었다. 근대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르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인간애의 뜨거운 관심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것이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 철학이다.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는 소외된 계층의 불우한 삶과 더불어 인간의 소박하거나 사소한 평범함 가운데 맛 볼 수 있는 삶 등을 찍었다. 그는 일상적 상황 즉 보편적 삶의 단편 속에서 어우러지는 생활감정을 가슴으로 느끼려했다. 그들의 작품 구석구석은 인간애로 가득히 스며 있다.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대전제는 사진에 찍혀진 것이 사실(Fact)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조작이 쉬운 디지털사진일지라도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범위에 들어오면 조작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비록 사실이 진실(Reality)이 아닐 수도 있지만,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은 있는 것만을 기록하여야 한다. 디지털시대조차도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은 유(有)에서 유(有)를 창조해 낼 뿐 무(無)에서는 어떠한 것도 형상화해 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황금률과도 같은 것으로 이것이 무너지면 포토저널리즘이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포토저널리스트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그 곳에 있었다는 현장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역사와 직접 맞닥뜨리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 강운구, 권태균, 허용무가 한국 현대사에서 진정한 역사가가 아닐까 싶다.

작가 약력 / 강운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의 강압적인 분위기속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는 국면들을 끊임없이 기록하면서, 우리 시각언어로서의 포토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한, 우리시대의 빼어난 다큐멘터리 사진가 중의 한 사람이다. 사진의 기록성에 바탕을 둔, 가슴 깊이 파고드는 그의 영상은 ‘서정적 리얼리즘’이라 불린다.

1942년생 경북대 영문학과 졸업

사진집 2005 : “강운구” 열화당 사진문고 2004 : “시간의 빛” 문학동네 2001 : “마을 삼부작” 열화당 1998: “모든 앙금” 학고재 신서 1994 : “우연 또는 필연” 열화당 1987 : “경주남산” 열화당 1975 : “내설악 너와집” 광장출판사

개인전 2001 : “마을 삼부작” 금호미술관, 서울 1994 : “우연 또는 필연” 학고재, 서울

작가 약력 / 권태

10여 년간 중앙대, 상명대, 신구대, 명지대, 재능대학 등의 사진학과에서 주로 사진사, 다큐멘터리사진, 포토저널리즘을 강의하였다. 월간 ‘뿌리 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 그리고 웅진출판사 등 여러 잡지에 사진기자로 재직하였으며 한국문화, 역사, 한국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였다.

1955년생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현 :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월간중앙 사진팀장 photocivic@joins.com

전시 2003 : 한국사진의 탐색(서울 경인 미술관) 1999 : 환경 기획전-동강별곡(가나아트센터) 시간의 선분(서남미술전시관) 1998 : 한국사진역사전(예술의 전당) 1997 : 생활의 발견-사진가 4인의 다큐멘트(서남미술전시관) 1996 : 사진은 사진이다(삼성포토갤러리) 1995 : 우리사진 오늘의 정신전(인데코화랑) 1994 : 민중미술 15년(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사진의 흐름(예술의 전당) 1993 : 관점과 중재-93한국현대사진(예술의 전당) 1982 : 사진2인전-Landscape(관훈미술관)

작가 약력 / 허용

허용무가 일관되게 지속해온 작업은 크게 두 갈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산업화와 새마을 운동 등으로 인해 변질되거나 소멸되어가는 우리문화의 원형을 기록하는 일이고, 하나는 피폐해진 농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이다. 그 결과물이 상여를 타고 가는 예수이고 원형의섬 진도이다.

1964년생 중앙대 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현 : 동신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사진집 2002 : “향 따라 여백 찾아 가는 길” 공저 그림같은세상 2001 : “원형의 섬 진도” 공저 이레 2000 : “상여를 타고 가는 예수” 가각본

개인전 2001 : “원형의 섬 진도” 금호미술관, 서울 2000 : “상여를 타고가는 예수” 하우아트갤러리, 서울 1997 : “탄광촌 사람들” 한마당화랑,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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