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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수 사진전 <몸>

​우동수 사진전 <몸>

2009.04.01 ~ 2009.06.10 / 양평

2009.06.17 ~ 2009.07.31 / 청담

몸의 이미지가 지닌 상징성을 찾아

류경선(중앙대학교 사진학과 명예교수)

우동수! 나는 이 후배의 고집과 장인정신을 좋아한다.

십오륙 년 전 일본 대학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재원! 아무나 할 수 없는 12×20인치 흑백필름 작업을 고집하며 상업 사진과 파인 아트의 경계를 넘나드는 풍운아!

하지만 천성 때문인가? 상업적인 비즈니스는 그에겐 영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우동수가 그동안 찍었던 작품들을 보노라면 어딘가 마음이 아주 편안해진다.

고즈넉이 펼쳐진 마을 한 구석의 채소밭, 물가에 덩그렇게 자리 잡은 바위 덩어리,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풀밭, 모래 언덕...... 이 모두가 대형카메라로 찍은 따뜻한 사진들이다.

아니 그런데, 이번엔 웬일이냐?

“동수가 누드를?”

모두가 놀랐다.

누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의 기호(記號)로서 다양한 의미를 제시해왔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한 관념적 매체였고, 관음적인 욕망의 상징 기호이기도 했다. 고전에서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프로에서 아마추어에 이르기까지, 누드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의미의 범주는 무한 그 자체였다. 이처럼 인간의 벌거벗은 몸이 수많은 예술가들의 다양한 표현 욕구를 자극하며 작품의 중심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몸의 이미지가 지닌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몸을 바라보는 우동수의 시선은, 최근 현대사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누드의 경향, 이를테면 아라키의 성(性) 본능에 대한 집착이나 헬뮤트 뉴튼의 완벽한 여성성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작업은 인간의 신체가 지닌 균형 잡힌 조형적 아름다움, 그것도 자연스런 조형미를 최대한 형상화(기호화)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사진 속의 주인공을 단순하고 명료한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했다. 조형적인 신체의 균제와 알몸(naked)의 대비,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이루어내는 조화를 통해 그의 누드는 마침내 성적 욕망이 아닌 정서적인 환영(幻影)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동안 찍어왔던 대형 작업이 지닌 자연스러운 따뜻함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며 이 따뜻한 봄날에 우리에게 던지는 인간에 대한 아름다운 찬탄이기도 한 것이다.

2009. 3

우리가 오래전부터 망각한 사진적 현실의 진

이경률 (사진 비평)

원래 우리가 인지하는 현실과 카메라의 현실은 다르다. 비록 오늘날 디지털 시대 사진적 현실이 시각적으로 완벽하다고 할지라도, 결코 사진은 현실의 정확한 복제가 아니다. 다만 유사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선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은 흐린 현실이다. 현실 이미지는 적어도 사진 발명 이전까지 인간의 눈에 직접 보여 진 이미지였다. 르네상스 그림 효과인 스푸마토 sfumato 와 근경과 원경을 구별하는 공간의 대기효과 등은 현실의 자연스런 재현이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사진에서 너무 선명한 이미지는 오히려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 카메라로 본 완벽한 현실 이미지는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 이미지를 오히려 교정하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또한 언제부터인가 현실의 과도한 정밀 이미지만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언제나 흐리고 불완전한 이미지는 현실 이미지에서 추방하게 되었다.

원래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은 두 눈으로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는 파노라마이다. 그래서 현실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수평구조 속에서 좌우 균일하게 펼쳐진다. . 결국 우리는 사진 고유의 현실을 망각하면서 오늘날 완벽하고 과도한 사진의 현실을 실제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 작가 우동수가 보여주는 사진의 웅변은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착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잘 정리된 나무와 빼곡히 산을 뒤덮는 숲, 바람에 웨이브 치는 풀, 산 계곡을 굽이쳐 돌아가는 작은 도로 등 어디를 봐도 관객을 불편하게 하는 주제의 특이성이나 왜곡된 화면 구성도 없고, 어떠한 서술구성이나 특이한 사건 혹은 분명한 메시지나 정보도 없다. 오히려 관객의 눈높이에서 보기에 적당한 전지 사이즈 액자는 관객으로 하여금 편안하게까지 한다. 어디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혹은 자연에 대한 어떤 감상적인 감동을 거기에 숨겨 놓았을까 ?

물론 첫 인상에 흑백사진이 주는 장소의 확인과 대상의 리얼리티 그리고 다소 웅장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에서 곧 바로 안셀 아담스나 마이너 화이트의 대자연의 위대함을 연상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풍경 그 자체의 가치를 결정짓는 구체적인 촬영 장소가 아니라, 사진 고유의 현실을 재현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게 된다. 그가 추적하려는 사진적 현실은 앞서 보았듯이 이미 초기 실험 사진가들이 재현한 현실의 유사 즉 결코 오늘날 과도한 극사실의 현실도 지나치게 흐린 현실도 아닌 인간이 가진 쌍안의 가장 부드러운 이미지와 그 조화로운 파노라마 그리고 왜곡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 이미지이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파노라마 사이즈인 12 x 20 (인치)의 대형 카메라(1939년 미국산)와 음화에서 그 어떠한 왜곡도 허락하지 않는 전지밀착 인화방식을 선택, 결과적으로 작가의 작품은 전혀 감상적인 풍경이 아닌 완전히 개념적으로 나타난다. 또한 그 진행방식 역시 지능적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현실 아닌 또 다른 사진적 현실을 유도하기 위해 옛 초기 실험 사진가들이 실행한 사진적 실험을 재현하면서 우리가 사진으로 보고 있는 현실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사진의 현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작가가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 그것은 오늘날 카메라 특히 디지털 카메라의 과도한 현실 복제 혹은 그것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인지하는 현실에 가장 유사한 현실 이미지 즉 우리가 오래전부터 망각한 사진적 현실의 진실이다.

우동수 약

학력

1987.3 신구대학 사진과 입학. 1990.2 신구대학 사진과 졸업. 1992.4 일본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 입학.(일본동경소재) 1996.3 일본대학 예술학부 사진학과 졸업. 2004.3 홍익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입학. 2006.2 홍익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 수료.

그룹전(국내)

1987. 40인의 시각.(반포 뉴코아백화점) 1987. 신구 8인전.(신구 상설전시장) 1988. 88올림픽전.(예총 전시장) 1889. power&rhythm전.(경인 미술관) 1999. 제1회 eko전.(kodak전시장) 2001. 제2회 eko전.(kodak전시장) 2003. 제3회 eko전.(문화일보전시장) 2003. 제3회 포토페스티벌 아시아의 사진가들(재한일본문화원 갤러리) 2003. 풍경전(조흥은행갤러리) 2004. 광고사진 교류전(세종문화회관 전시장) 2005. 풍경삼국지(신세계 백화점.광주) 2005. 제4회 포토페스티벌 아시아의 사진가들(후지포토 갤러리)

그외 다수

전시(국제전)

2003. 제3회 포토페스티벌 아시아의 사진가들(일본 후지포토 갤러리) 2004. 세계 광고사진 교류전(중국 도련) 2005. 제4회 포토페스티벌 아시아의 사진가들(일본 후지포토 갤러리) 2009. 국제 사진영상기획전 (고은 미술관) 부산

개인전

2005.9.22-10.2 진풍경( 금호 미술관 서울) 2006.9.27 - 10.3 약의 미 (관훈 미술관 서울) 2007.05.17 - 2007.05.31 한풍경( 갤러리 UMC 전주) 초대전 2009.4.1 - 5.31 몸 ( 갤러리 와)

경력

2000. 김대중 대통령 촬영.(노벨 평화상 수상기념 및 각 기관 게재용)

작품보관

일본대학교 예술학부 사진학과 작품영구보관소. 노벨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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