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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훈 사진전 <유민의 땅>

성남훈 사진전 <유민의 땅> 2006.03.04 ~ 2006.03.29

1991년부터 소외된 사람 기록에 몰두해온 성남훈씨는, 특히 세계 전역의 분쟁지역을 기록하여 한국 스폿 사진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그는 1992년 ‘루마니아 집시’ 작업으로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의 ‘르 살롱’전에서 ‘서사시 같은 사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94년 프랑스 사진에이전시 ‘라포(Rapho)’의 소속 사진가로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 라포 한국특파원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 민주화과정을 취재하여 월드프레스포토 상에서 ‘일상뉴스 부문’을 수상했으며 ‘타임’, ‘르몽드’, ‘리베라시옹’, ‘지오’등 세계 유수 잡지와 신문에 사진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1993 년 파리 사진학교‘이카르(ICART PHOTO Ecole de Paris) 수석졸업 1994 년 프랑스 에이전시‘라포 Rapho’소속사진가로 활동을 시작 1996 년 프랑스의 구호단체 에켈리브르 (Equilibre)의 도움으로 보스니아 내전현장에서 사진작업, 본 작업으로 한국사진대상 우수상 수상 1999 년 세계보도사진대전 WORLD PRESS PHOTO 일상뉴스부문 수상 2002 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Lemonde)에 한,일 월드컵에 대한 15일간 사진칼럼연재

성남훈의 유민의 땅 1991-2005

글 :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 소장) 사진집 “유민의 땅”에서 발췌

인간의 냄새를 맡게 하는 인간사랑의 사진가

성남훈이라는 이름을 듣거나 떠올리게 되면 맨 먼저 날아드는 것이 루마니아 난민 풍경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진평론가들은 유독 한 사진가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 사진가의 사진적 인상과 그에 대한 데이터를 꾸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는 사진의 풍경이 곧 작가의 풍경이라는 사진의 무게가 작가의 삶의 무게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무리 사진이 객관적인 매체라고 해도 작가의 내적 성찰과 사상의 표출인 한은 한 사진가가 세상과 마주했던 세상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그 사진가의 삶의 태도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정신세계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이 철학이고 철학의 모습을 띠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92년 8월호 월간 <사진예술>에서 그의 사진을 처음 보았다. 1991년부터 1992년까지 프랑스 근교에 찍었다는 루마니아 난민 풍경. 그 사진들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남아 있다. 그가 보여준 다른 어떤 사진들보다도 강한 이미지로, 또 지워지지 않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나 자신의 개인의 주관적 감성과 정서적 태도가 매개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분명 거기에는 한마디로 말해질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 무언가가 그의 사진의 토대가 되고, 원천이 되고, 힘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 무언가는 지금까지도 그의 사진을 지탱하고 그리고 그의 삶을 지탱하는 변함없는 인간사랑의 정신이다.

그는 파리 유학시절에 이 루마니아 난민 풍경을 찍었다. 난민 풍경이라고 하지만 흔히 접하는 난민 풍경과 사뭇 다른 오히려 집시 풍경에 가까운 사진들이다. 그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애잔한 서정성 속에 있다. 작가의 시선은 순수하다. 또 대상에 다가서는 모습도 조심스럽고 멈칫거린다. 그러나 그 조심스럽고 멈칫거림이 사진을 더욱 투명하고 아름답게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프랑스 사진의 전통적 미감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이몽골 유목민 사진들 속에는 성남훈이라고 하는 사진가가 세상과 마주했던 창(窓)을 드러내 보인다. 즉 대상들에 대한 그의 삶의 태도를 발현하고 있다. 그는 긴 시간 속에서 대상들을 조망하고 대상들이 예기치 않게 드러내는 삶의 순간과 그 순간의 포즈들을 생의 제스처로 끌어 들인다. 일정한 거리를 가지고 급하지 않게, 완만한 호흡으로 그는 그곳에 떨어진 빛을 보고, 삶의 정황들을 보고, 전경에서 원경까지 너른 삶의소록도 시선을 갖는다. 충분히 여유롭고 충분히 안온한 사진들이다.

그는 이런 사진들로 시작했다. 급하지 않는 완만한 사진, 충분히 여유롭고 충분히 안온한 사진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의 모습을 표출했다. 치열함보다는 예술적 미감이 돋보인 사진이었으나 그러나 그의 첫 사진에서도 그는 자신의 사진적 힘을 드러냈다. 바로 인간사랑의 힘이다. 때문에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이는 시간 문제였다. 세상을 향해 선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한결 같이 인간사랑의 힘에 의지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진의 힘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사진의 역사에서 볼 때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사랑의 정신으로 세상의 진실과 정의에 대한 공명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물론 오늘날 이 인간사랑이 휴머니즘으로 이해되면서 도식적으로 변질된 휴머니즘이란 말을 꺼리기는 하지만 휴머니즘은 누가 무어라 해도 인간사랑의 정신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휴머니즘이라는 말은 진부할지 모르나 인간사랑의 정신은 결코 진부할 수 없다.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 인간사랑의 정신은 아름다운 차별성의 영역이다. 지금도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물을 때마다, 또 저널리즘 사진과 다큐멘터리 사진이 어떻게 구분되며, 다큐멘터리 사진이 순수예술 사진과는 또 어떤 경계를 갖는가를 물을 때마다 나는 인간사랑의 정신 혹은 인간사랑의 순도의 차이를 말한다. 그러면서 성남훈의 사진을 예로 든다. 성남훈의 사진에서 다른 사진 장르와의 경계를, 차이를, 다름을 말한다. 그의 사진에는 그 “무언가”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사진의 힘, 바로 인간사랑의 정신이다.

성남훈은 루마니아 난민 풍경에서부터 자신이 어떤 성향의 사진가인지를 알게 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로서 세상을 노출하는지, 또 자신에게 쥐어진 카메라로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비록 아직은 학습하는 자의 순수한 시선이었고, 또 아직은 감성과 서정성에 의지하는 예술적 미감을 앞세운 사진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삶에 한 걸음 가까이,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으로, 중심보다는 주변으로 향하겠다는 사진적 태도를 알게 했다. 루마니아 난민 풍경은 바로 그 점에서 그가 이후에 어떤 사진의 길을 걸어 갈 것인지, 또 어떤 자세와 태도로서 세상과 삶을 노출할 것인지를 알게 하는 단초적 사진들이다.

그는 이후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나아간다. 루마니아 난민 사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선과 발걸음을 세계 속으로 확장시킨다. 1994년에 <라포(Rapho) >에이전시 소속이 되어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간다. 이때부터 그는 “찍는다.”, 하는 말과 더불어 “취재한다.”라는 말을 몸에 붙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진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의 사진에 비해 보다 호흡이 빨라지고, 보다 광각적이 되며, 또 보다 대상에 한 걸음 근접하는 저널리즘 사진의 전형들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때의 사진들은 이전의 사진에 비해 어떻게 달라졌는지, 무엇이 빠져나가고 또 무엇이 그 자리를 채워졌는지, 뿐만 아니라 그의 사진관과 인생관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삶과 사진 모두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사진들이다.

사실 이 작업들은 그리 긴 시간의 작업이 아니었다. 또 포토저널리즘으로서 극적인 상황들과 마주쳤던 사진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을 시발로 그는 프랑스 시진의 서정적 미감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순수예술사진의 미감에서도 벗어나는 본격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 사진들이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사진의 길목에서 이제까지 조심스럽게 사용했던 정의, 진실, 상실, 소외, 고립, 단절, 결핍, 사랑, 희망과 같은 감각적 수식어들을 보다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상용어로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남훈은 1995년 프랑스에서 한국취재를 위해 잠시 들어온다. 그가 한국으로 들어온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다. 한국이야말로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투사해야 하는 사진의 무대이고, 또 한국이야말로 세계사의 중심이자 어느 나라 못지않게 정의, 진실, 소외, 차별의 문제가 노출되어 있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한동안 힘들어 했다. 자신이 이 땅을 너무 잘 알기에, 또 이 땅에서 찍는 것과 취재하는 것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물리적, 심리적, 제도적으로 너무 잘 알기에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취재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 땅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는 못했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그가 소록도를 찍어야 했던 것은 당연했다. 늘 주제로 삼고 싶어 했던 역사성, 즉 역사 속에 드러나지 않은 삶의 상처들, 결핍들, 고난들, 희생과 비극의 모습을 사진으로 말하려 했기 때문에 그가 일제시대 때부터 존재해왔던 한센병 환자들의 상처와 희생과 고난의 현장으로 달려간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또 그의 인간사랑과 인간정신으로 볼 때도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역사적 애환들을 사진으로 보듬는 것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의무에 속하는 지극히 당연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들이 사진적 정체성에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은 소통되고 회자되었던 곳이 예술사진계였고, 전시장이라는 예술사진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5년은 그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점검하게 되는 중요한 한 해였다.

자신이 어떤 사진가로 자리매김 되고 또 투영되어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그때 그는 다시 눈을 세계의 분쟁지역, 가난과 결핍의 소외 지역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1996년에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1997년에는 자이레의 르완다를 가서 난민들의 비참함과 소외된 삶을 현장을 취재하고, 1998년 인도네시아로 간다. 그곳에서 수하르토 정권의 붕괴와 민주화 과정을 찍는다.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건져 올린 생생한 삶의 사진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시 찾은 사진의 정체성. 그는 자신의 사진이 그늘진 삶의 가장자리를 비추는 진정한 다큐멘터리 사진이기를 바랬다. 또 말과 구호가 아닌 진정 소외되고 단절되고 희망 없음과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힘없는 존재들을 위한 사진가이기를 바랬다. 그때부터 그는 한시도 곁눈질함이 없이 지구촌 곳곳으로 달려가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말하고 삶을 기록했다. 1999년에 분쟁지역 코소보를 가고, 2000년에는 기아로 허덕이는 에디오피아로 가 삶과 희망을 말했으며, 2001년에는 인도 구자라트 지역의 지진 현장을 찾아가 폐허지역이 핀 사랑과 의지의 모습을 담았다. 2002년에는 또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아이들의 희망의 모습을 비추고, 2003년에는 전쟁지역 이라크를 가서 그곳 사람들의 희생과 상처를 노출했다.

그의 무대는 세계의 분쟁지역과 가난과 소외 지역이었다. 그의 사진은 지구촌 분쟁지역에서 혹은 기아선상의 지역에서 그리고 긴급하게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구호 지역에서 마주치는 삶의 풍경이었다. 사진의 프레임은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를 보게 한다. 희망과 사랑의 모습이다. 인간사랑과 인간정신에서 나온 사랑의 프레임. 그의 사진에 사랑의 마음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랑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고난 앞에서는 희망을, 비참함 앞에서는 삶의 의지를 잃지 않게 하려는 사랑의 프레임이다. 여전히 삶은 살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지구촌 곳곳의 식지 않은 인간사랑의 따뜻함을 노정하고 있기에 그의 프레임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이다.

그렇게 달려온 지난 15년의 세월. 그때의 이미지를 한 자리에 모은 성남훈이 사진집 <유민(流民)>은 그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큰 의미는 자신이 걸어온 지난 15년의 시간이 허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고, 또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지난 시간 자신이 세상 앞에서 어떤 모습의 사진가였는가를 증명하는 정체성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사진가의 한 시기의 사진을 집대성한 사진집을 모노그래프(monograph)라고 부른다. 모노그래프는 일반 전시용 사진집과는 다른 일종의 논문과 같은 철학적 편력의 사진집이다. 사진가의 철학과 삶의 모드(mode)를 담은 사진집이며, 삶의 모드와 태도에서부터 시대 속에서 투사했던 시대정신과 시대적 사상까지 알게 한다는 점에서 모노그래프는 일반 사진집하고는 차별화된다. 또 모노그래프는 한 시기를 마무리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끝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집이다. 이 땅에서 모노그래프와 만나는 일이 매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성남훈의 모노그래프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어쩌면 그 옛날 <사진예술>을 통해서 처음 만났던 루마니아 난민 풍경들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고, 아주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을 소재로 했던 사진들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충분히 모노그래프를 남길 만큼 일관된 사진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또 그럴 만큼 충분한 시간, 충분한 사진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변치 않는 정신세계와 삶의 태도이다. 요즘 그를 만나면 두 가지를 말을 건넨다. 루마니아 난민 사진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그때의 인간사랑의 공명과 감정의 떨림을 잃지 말라고, 또 세월이 가도 이제껏 그가 보여준 사진에서처럼 그의 삶 속에서도 인간사랑의 냄새를 맡게 해달라고.

성남훈의 사진집 <유민>은 작가의 지난 삶처럼 한 사진가가 지난 삶의 한 가운데서 만난 세상의 모습이다. 사진은 모든 존재들이 세상 속에서 남긴 마지막 포즈이다. 사진이 소중한 이유도 존재들의 마지막 포즈이기 때문이고, 존재들이 마지막 남긴 생의 제스처이기 때문이다. 성남훈의 사진은 그가 지난 시간 속에서 만난 존재들의 삶의 포즈들이다. 그것들이 다시 책을 통해서 마치 우물 속 물길질처럼 어둠 저쪽에 있다가 첨벙하고 소리 내고 살아나는 존재들의 부활이다. 그렇게 어제의 시간 속에서 만났던 존재들을 다시 불러내 한자리에 앉히는 것이 사진의 힘이다. 사진의 힘은 시간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의 부재를 막아주는 데 있다. 성남훈의 <유민>은 그 점에서 시간 저쪽으로 밀려난 존재들의 사라짐을 막는 아름다운 인간정신의 사진집이다.

아름다운 것들은 다 제자리에 있다 _ 박노해 시인“유민의 땅”에서 발췌

성남훈의 사진 속 눈동자에서 나는 지난 6년 동안 눈물 흐르는 지구마을의 골목길에서 마주친 그 눈동자를 다시 만난다. 폭격으로 무너진 골목길에서, 촘촘한 총알구멍 뚫린 부서진 집 앞에서, 모래 바람에 펄럭이는 찢어진 천막 안에서, 지진과 해일에 휩쓸린 폐허의 지평선에 서, 태양도 빛을 잃은 지하 공장과 화려한 도시 외곽의 쓰레기더미와 황량한 고가도로 밑에서, 사진 속 맨발의 저 아이들이, 휑한 눈망울들이 지구 위를 흘러간다. 이민자로, 집시로, 난민으로, 유민이 되어 유민이 되어 아프게 흘러간다. 그들이 흘러 다니는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 유민들의 떨어지는 눈물방울로 연주되는 악기, 한숨과 울부짖음으로 가창유민 되는 지구시대의 뼈아픈 노래다. 성남훈의 카메라는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정직하게 찍어 보인다. 그의 사진 한장 한장은 총알 박힌 내 가슴의 엑스레이 사진을 들여다보듯 이렇게 생생한 쓰라림으로 되살아온다. 지구의 구석진 쓰레기터에 날리는 비닐봉지처럼 떠도는 사람들. 살가도의 말처럼 '이들도 우리와 똑같은 욕망과 꿈과 권리를 가진 사람들'인가? 이들은 정녕 불쌍하게 여겨져야 할 사람들인가? 성남훈의 사진은 '아니다!'라고 나직이 부르짖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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