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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형의 캔버스 展>

<진행형의 캔버스 展>

2008.01.11 ~ 2008.03.05

진행형의 캔버스 Portrait 참여작가 - 오상택 / 박현두 / 이일우 / 배찬효 / 손준호

진행형의 캔버스 Landscape 참여작가 - 이정록 / 양정아 / 백승우 / 조현아 / 김정주

흔적의 미학과 시뮬라크르의 진

오늘날 현대미술을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주체-장면(sujet-spectrum)의 관점에서 장면의 해석학적인 이해가 아니라 주체-작동자(sujet-operator)의 입장에서 본 사진의 "실행 방식(modus operandi)" 즉 초기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적 이론이기도 한 "사진적인 것(the photographic)"이다.

흔히 지시론이라고 하는 이 이론은 예술적 실행에서 관객에게 특별한 개념적 이해를 요구하는데, 예컨대 모든 작품의 메시지는 그 작품을 구성하는 형식이 아니라 작품의 원인이 되는 상황적인 유사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때 활용된 매체는 연극적 제스처를 위한 실행 도구로서 언제나 "장소와 연관된 유사관계"를 가지는데, 그 첫 출현은 역사적으로 1970년대 장르들의 카테고리를 붕괴하는 설치(installation)였다.

당시 "확장된 영역의 조각"으로 이해된 설치는 결과적으로 재현 영역에서 회화 작품의 본질적인 구성(모더니즘)을 무효화하였고,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더 이상 설치를 위해 활용된 오브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암시하는 상황에 관계하는데 이는 정확히 사진의 지표적인 원리 즉 "사진적인 것"으로 설명된다. 이럴 경우 확장된 설치 공간은 결코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최초 원인적인 것을 암시하는 흔적(trace)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원인적인 것에 대한 물리적 자국으로 이해되는 설치는 점진적으로 사진으로 진화된다. 다시 말해 설치는 시간의 유한성과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탁월한 매체를 발견하는데 그것은 곧 현실의 직접적인 자국으로서 설치를 대신하는 흔적의 미학 즉 사진이다. 이러한 미학은 또한 행위미술과 대지미술을 성립시키는 사진의 동결효과와 유물효과로부터 최종적으로 진화된 것이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가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그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연극에 의해서다"라고 단언하였듯이, 미술이 흔적의 미학을 도입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진의 연극성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설치 이후 1980년대 사진을 전략적인 매체로 활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재현예술은 "사진의 예술적 진화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사진적 진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역전은 곧 일상을 무대로 하는 연극으로의 회귀를 말한다. 그것은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분명한 특징인 탈-장르의 신호탄임과 동시에 이질적 요소로서 연극성을 철저히 거부한 모더니즘의 완전한 이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형식주의로서 새로운 매체의 활용이 아니라 사진의 예술적 실행 방식으로서 "사진적인 것"이다.

탈-장르의 연극적 실행으로 진화한 오늘날 현대미술의 또 다른 특징은 언제나 상황설정을 위한 전략적 재현 도구로서 사진이 활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사진은 결코 물신주의를 위한 오브제나 정보 전달의 구체적인 메신저가 아니라, 사진의 본원적인 특징으로서 오로지 현실의 있음직한 상황설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활용된 현실의 기록이다. 이럴 경우 주체-작동자의 연극적 시나리오에 의해 설정되는 전략적인 차원은 구체적인 의미를 위한 논리도 상징도 아닌 오히려 무의미의 파토스를 위한 의미의 학살이다. 이러한 차원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한편으로 사진은 “또 다른 객관성”을 앞세우는 그림-사진(forme-tableau)의 형태로 현실의 주어진 순간(instant donne)을 기록하는 재현도구로 활용된다. 거대한 캠퍼스에 물감 대신 완벽한 현실 이미지를 사진으로 직접 기록하거나 유형학 혹은 1인칭 미세-보도(micro-reportage) 형식으로 현실의 결정적 순간(instant decisif)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작가의 제스처는 외관적으로 사진가가 사진을 작품으로 실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반대로 화가가 작품을 사진으로 실행하는 "이미지-행위(image-acte)"가 된다.

또 한편으로 작가는 미장센 방식으로 사진을 현실의 반박할 수 없는 상황설정 다시 말해 응시자의 상상적 재구성을 위한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한다. 여기서 상황설정은 오로지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그리고 구조 없는 구조(메타-구조주의)를 지시하는 흔적으로서 사진적인 장치(dispositif)일 뿐이다. 게다가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는 이러한 개념적 장치를 극대화하면서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가능한의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게 한다.

결국 철저히 계산되고 연출된 작품에 작가가 예술적 매개물로 도입하는 것은 전통적 매체로서 물질적 사진이 아니라, 경험적인 환상과 내재적인 초-현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복판으로 침수하면서 모든 문화적인 코드와 집단 가치를 이탈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사진적 사실주의이다. 이러한 이탈은 주체-작동자의 새로운 예술적 항로의 개척이다. 왜냐하면 고전시대 이후 작가와 주제의 개념은 오랫동안 "안정된 의미와 집단 가치"속에서만 이해되어 언제나 객관적으로 성립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기 10명의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정확히 이와 같은 개념적인 이탈의 길을 주파하고 있다. 대부분 최근 예술적 경향을 경험한 외국 유학파들인 이들의 공통분모는 "예술적 실행에서 사진을 작품으로 실행하는 사진가가 아니라 작품을 사진으로 실행하는 조형 예술가들"이라는 사실에 있다. 말하자면 이들은 사진가도 화가도 아닌 진흙으로 세상을 만드는 조물주와 같이 사진으로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을 누설하는 최후의 창조자들인 셈이다.

작가들의 사진은 우선 현실로서의 환상과 환상으로서 현실을 보여주는 거의 완전한 재현매체가 된다. 예컨대 언뜻 보기에 실제 고층 빌딩처럼 보이는 작가 김정주의 도시 건축물 사진과 장난감 모형 병정을 현실에 뒤섞어 놓은 백승우의 연출사진은 응시자로 하여금 단숨에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러나 있음직한 환상으로 침수하게 한다. 치밀히 계산된 철침 스테이플러 구조물과 모형 병정들이 갑자기 사진으로 크게 확대되는 순간, 모든 현실의 비율이 무효화되면서 응시자는 장면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으로부터 전염된 상상적인 현실을 재구성한다.

사진은 또한 환상주의를 넘어 결코 믿을 수 없는 신비주의를 드러내는 마술적인 전이(轉移)를 보여준다. 작가 이정록의 작업이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장면의 신비를 만들어 낸다고 하면, 손준호의 비현실적인 상황설정은 현실의 있음직한 신비를 들추어낸다. 또한 반박할 수 없는 현실로 위장된 오상택의 미장센이 오늘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공통된 욕구를 사진으로 실현시킬 때, 양정아의 현실과 비현실의 시각적인 착각은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사진 매체의 탁월한 기록성을 확인시켜 준다.

사진은 현실의 기록으로서 작가가 의도하는 개념적인 상황설정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장면의 일방적인 정보 전달을 무효화하면서 장면과 그 장면을 해독하는 관객과의 유통을 암시하는 이일우의 사진은 정확히 70년대 개념사진의 외형과 닮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설명하는 지시소로서의 장면은 결코 기호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호 발신-수신기호로서 소통의 다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조현아의 이국풍 식물사진 역시 개념적으로 현실과 비현실,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언어학적 의미와 사진적 의미의 분열과 딜레마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작가 박현두의 카멜레온적인 장면과 배찬효의 자기연출은 공통적으로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드는 문화적 충돌과 이질성을 드러내는 상황적인 역설(paradox)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역설은 논리적인 역설이 아니라 사진의 신빙성을 담보로 하는 일인 다역의 퍼포먼스와 반박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럴듯한 연출을 통한 단순한 사진적 역설이다. 이와 같이 사진은 그 어떤 재현 매체도 시행할 수 없는 복제의 시늉과 모조품 즉 패러디(parody)와 페이크(fake)를 통한 역설의 미학으로 나타난다.

결국 작가들이 연극적 시나리오로 작품에 도입하는 사진은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의 상황설정을 위한 전략적인 도구로서 궁극적으로 응시자의 상상적 재구성을 위한 환원적 역할 즉 자극-신호(stimuli-signes)로 활용된다. 사진이 연출하는 현실의 상황적 딜레마, 그것은 플라톤 철학에서 완전한 현실로 위장된 크라틸로스(cratylos)의 폭로임과 동시에 오랫동안 지하 어둠에 유폐된 억압되고 망각된 존재의 누설이다. 이럴 경우 작가가 보여주는 장면은 단순한 유통을 위한 정보가 아니라 더 이상 의미론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있음직한 어떤 현실 즉 시뮬라크르의 진실을 드러내는 존재의 흔적이 된다.

이경률 (사진 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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