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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 사진전 <산과 산>

전흥수 사진전 <산과 산>

2008.03.07 ~ 2008.04.15

또 다른 재현의 길목에

우리가 흔히 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빛의 반사에 의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말한다. 그러나 좀 더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이미지는 어떤 표상을 말하는 것일 뿐 반드시 시각적인 이미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재현은 대상이 어떤 무엇에 감화되어 드러나는 심정적인 것까지도 포함하는 이마고(imago)를 말한다. 예컨대 사람을 사귀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여행지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것이 오랫동안 그 지방의 이미지로 남아 있기도 한다.

그래서 재현은 크게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개념을 가지는데, 하나는 시각 리얼리즘을 말하며 또 하나는 시각 리얼리즘을 이탈한 최초 인상에 대한 흔적으로서 이미지 말하자면 정신적 리얼리즘을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오로지 시각 리얼리즘에만 재현 개념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의 리얼리즘 개념은 유일하게 인간의 망막에 길들려진 실제 현실의 사실주의에 모든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옛날 우리 선비들이 붓과 먹을 들고 화선지에 그리는 재현은 결코 시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그리는 것(drawing)은 얼핏 원근법에 익숙한 우리들의 눈으로 볼 때, 현실의 외형을 모방하거나 축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자신들의 경험적인 감각을 통해 드러난 초감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어떤 인상(impression)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적 판단은 서양의 시각적인 사실주의에 근거를 둘 뿐, 그 누구도 이러한 정신적 리얼리즘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여기 보는 작가 전흥수의 이미지들은 바로 이러한 개념적인 문제를 교묘히 파고들고 있다. 그의 이미지들은 아름답다, 좋다, 그럴 듯하다 등 더 이상은 시각적인 리얼리즘에 관계하지 않으며 구체적인 지명이나 형태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현실의 사실주의를 의도적으로 파괴하면서, 오히려 그 이면에 감추어진 아무 것도 아닌 무채색의 현실과 예술의 극단적인 변방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미지들은 철저히 개념으로 무장된 일종의 퍼포먼스-이미지인 셈이다.

현실의 리얼리즘과 사실주의의 파괴, 그것은 결국 시각적인 재현과 정신적 재현 사이에서 드러난 개념적 딜레마이다. 좋고 나쁨과 아름답고 추함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도 쉽게 대상을 판단하듯이, 망막에 익숙한 사실주의의 기준에 따라 너무도 쉽게 리얼리즘과 비리얼리즘 그리고 예술과 비예술을 판단한다. 그러나 모든 판단은 관점에 따른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미지들은 의도적으로 예술의 규범을 이탈하는 예술을 위한 역설인 셈이다.

그의 이미지를 읽기 위해서는 재현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있게 한 최초 원인적인 작가의 의도를 이해해야 하는 “읽기의 개종”이 필요한데, 말하자면 그에게 리얼리즘은 더 이상 시각적이고 물질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가 경험한 삶과 현실에 대한 진솔한 인상의 재현이다. 이와 같이 그가 보여주는 산(山)은 우리가 보는 풍경으로서 산이 아니라 경험적인 인상으로서 재현 이미지일 뿐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산은 현실의 가장 대표적인 시각 리얼리즘이면서 리얼리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경험한 산 이미지는 카메라의 렌즈로 포착한 산도, 물감으로 그려진 산도 아니며 게다가 디지털 합성 산은 더욱 더 아니다.

작가의 산 이미지들은 또한 더 이상 사진도, 그림도, 디자인도 아닌 오로지 “재현-행위(representation-acte)”를 통해 드러나는 현실의 또 다른 리얼리즘일 뿐이다. 그 점에 관해 작가는 “(...)디지털이 이해하고 해석하여 만들어내는 산의 이미지, 내 감정과 디지털의 이미지 프로세싱에 의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산 이미지, 나는 내가 지금까지 느끼고 표현해 왔던 표현기법 보다 더 월등히 나타나는 새로운 산 이미지에 감동한다”라고 진술한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탈-장르와 탈-영역에서 예컨대 디지털 기술의 드로잉 효과, 음양 반전, 모노톤, 리터치 등 모든 조형적인 것들 동원해 렌즈에 의한 사실주의와 물감과 터치로 진행되는 캔버스를 철저히 거부한다.

결국 그가 보여주는 산 이미지는 시지프의 불가능한 도전처럼 현실의 시각 리얼리즘에 대한 역설이다. 거기에는 더 이상 장르의 구획도, 이데올로기의 위험도, 매체의 특수성도 없다. 어디까지 예술인지 어디까지 비예술인지, 어디까지 드로잉인지 어디까지 디자인인지, 모든 것이 색채의 조합과 형태의 무질서 그리고 회색의 블랙홀로 빨려들어 갈 뿐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적 판단과 가치를 원점으로 돌리는 또 다른 재현의 길목에서 작품의 예술적 메시지는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이경률 (사진 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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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흥수( 田興秀 Chun, Heung-soo )

1956 서울출생 1982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졸업 (시각디자인 전공) 1982~85 (주) 오리콤에서 TV-CM 제작 1987 일본 Musashino 미술대학 대학원 연구과정 이수 (시각전달 디자인) 1989 일본 Tama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영상. 사진디자인) 1994~1998 서경대학교 산업디자인과 교수 2000~현재 신구대학 사진영상미디어과 교수

전시회

개인전 (12회) 1989 제1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LAD’S Gallery. Tokyo. Japan 1992 제2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Indeco Gallery. 서울 1993 제3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Gallery Icon. 서울 1997 제4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정․물’ Kodak Photo Salon. 서울 2000 제5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화경’ Gallery WooDuk, 서울 2000 제6회 Chun, Heungsoo Photographic Images 전 ‘화경’ 진부령 미술관, 속초 2003 제7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 전 'Memories' Gallery Lux. 서울 2004 제8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 전 'City & Memory' 이공갤러리. 대전 2004 제9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 전 SFAF(Seoul Fine Art Festival) ‘화경’ 예술의 전당, 서울 2006 제10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전 ‘산과 산’ 갤러리 아트앤드림, 서울 2007 제11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전 ‘산과 산’ APG(Asia Photographers Gallery), Fukuoka, Japan 2008 제12회 Chun, Heungsoo Photo-Drawings전 ‘산과 산’ 갤러리 와, 경기도 양평

그룹전

6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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